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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인공적인 것들의 자연스러움

드디어 마지막 기항지인 싱가포르
부두에 입항하며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평화로운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조깅하는 사람들, 야자수와 수풀이 우거진 산림, 놀이동산과 같이 이어진 센토사섬 그리고 그 섬으로 이어지는 모노레일과 케이블카의 모습은 순간 나라 전체가 하나의 테마파크 같았다. 그리고 그 테마파크는 자연과 건축물들의 조화가 매우 돋보였다.
이런 조화의 절정은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야경 공원인 Marina Bay에서 볼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Marina Bay의 풍경을 보고 나는 조용히 탄성을 질렀다. 마리나 베이샌즈 호텔의 화려함과 슈퍼트리의 영롱한 빛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영화 아바타 속의 새로운 행성으로 들어간 것만 같아 낭만적인 분위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건축물에 이렇게 감성적으로 마음이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 공원에는 거대한 나무 모양의 조형물인 슈퍼트리들이 많이 있는데,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압도적인 크기와 원시림 같은 풍경에 놀라곤 한다. 이 슈퍼트리는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신생 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그런데 나무 모습만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진짜 나무처럼 행동한다는 게 중요하다. 열을 흡수하거나 빗물을 저장하고, 태양 에너지를 비축하기도 한다. 압도적인 크기로 큰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또한 실제 나무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리고 진짜 나무가 주지 못하는 기쁨을 더 주기도 한다. 매일 밤 음악에 맞춰 라이트 쇼(Garden Rhapsody)를 선보이기도 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스카이웨이(Skyway)는 다른 장소로 연결해준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대해 참 많이 고민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싱가포르는 'City in a Garden'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고 한다. 싱가폴은 쾌적한 도시경관을 위해 녹지 비율을 계속해서 높여가고 있는데, 국토가 좁은 특성상 녹지를 더 넓힐 수 없게 되자 아예 도시를 녹지 안에 둔다는 발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도시를 녹지 안에 두기 위해, 도시 곳곳에 조성된 공원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도시 곳곳에 조성된 '파크 커넥터(Park Connector)'이다. 싱가포르의 국가공원관리국은 2007년부터 도시 전체를 둘러싸기 위한 파크 커넥터를 조성하고 있는데 길이만 총 360km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라고 한다.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현실에서 이루어 내기 위한 그들의 발상과 도전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공원을 연결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뜬금없지만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에서 한 졸업 연설 내용 중 'connectiong the dots'가 떠올랐다. 때로는 내가 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작은 점처럼 작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점들을 연결했을 때 새로운 길이 그려지고 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도 심심할 때마다 스티브 잡스 연설문을 수양록(훈련소에서 일기를 쓰라고 주는 노트이다)에 적거나 외우기도 하였다.
싱가포르가 공원이라는 점들을 이어 꿈을 그려나가듯이 나도 나의 경험을 이어가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그려보다가 3개의 점을 연결해 보았다. 학교에서 이중 전공을 하느라 사회학과 디자인조형학부의 수업을 함께 들으며 2가지 학문을 함께 배울 수 있었는데, 보통 주변 친구들이 왜 이렇게 다른 학문을 학습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이렇게 답변하곤 했었다.
'사회학은 문제 해석의 시선,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시선이다.'
물론 사회학과 디자인 모두 문제 해석과 해결의 시선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에게 조금 달랐던 점은 사회학은 사회현상을 분석하면서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관심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디자인은 실제로 사용자가 사용하는 패턴을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더 윤택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더 자세히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주었다. 이 2가지 학문을 공부하며 나는 그 시너지를 늘 느낄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크게 남는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해결된 문제의 '공유'였다.
사회학의 시선에서 해결한 문제 해석과 디자인의 시선에서 해결한 문제 해결의 방법 모두 너무나 탁월한 아이디어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소비되기에는 장벽이 너무나 높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 세계였다. 소프트웨어 세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공유'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배우기 위해 네이버에서 설립한 교육기관에 지원하여 합격하기도 했는데, 사회학과 디자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결한 문제들을 어떻게 더 잘 공유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이 나에게 가장 큰 관심사였다.
특히 가장 관심이 있는 건 교육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이다. 왜냐하면,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콤플렉스는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10대가 그렇듯이 고등학교 때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와 같은 고민을 하며 나의 장점과 빛나는 모습을 찾지 못해 힘들었던 긴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수능과 대입이라는 난관을 이겨내기 위하여 나를 탐색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나 스스로 내가 원하는 길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만들어나가기 위하여 스스로 두 번째 전공인 디자인도 선택하고,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길도 선택하게 되었다. 앞으로 교육 소프트웨어와 관련하여 어떤 일을 점차 해나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경험을 이어 그려진 그림이 나 스스로 가장 찾고 싶었던 풍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가폴이 그리는 큰 그림을 보며 작지만 큰 나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와 점들도 지금은 작지만, 더 큰 그림이 될 수 있게 더 선명한 점들을 찍어나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