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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

오만 살랄라에는 욥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무덤이 있다. 마침 기독교이신 간부분의 기획으로 다 같이 오만에서 ‘성지순례’란 조금은 거창할 수 있는 기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난 종교는 없지만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참여하였는데,그 짧은 기행에서 느낀 것은 비단 종교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욥의 무덤에 가는길은 산 중턱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중동이라 메마른 땅이라 생각했지만 계절풍이 가져다준 습기를 머금은 바람 덕분에 숲은 초록 빛깔로 가득하며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배에서는 바다의 짠내, 육상에서는 모래 냄새만 맡다가 식물들이 뿜어내는 향이 콧속으로 들어오니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때마침 날씨도 매우 좋아 기온은 높았지만 그 햇살들이 식물들의 표정을 다채롭게 해주었다. 그러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면 식물들이 춤을 추고 그 광경을 보노라면 마치 설화 속 이야기의 배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중동지역에서 본 초록빛의 향연은 더욱 짙게 느껴졌다.
그렇게 1시간여 정도를 달리며 상쾌한 기분으로 도착한 욥의 무덤. 성경에서는 부자였다고 묘사되는 욥의 무덤은 지금은 아주 조용히, 그리고 소박하게 안착해 있었다. 욥의 무덤 입구에는 붉은 꽃이 만발해 있었고, 묘 내부에는 화려한 원단이 덮여 있고 그 원단에 시선이 다가갈 쯤이면 이내 곧 불에 타며 보이지 않는 공간을 가득채우는 유향의 향기가 나의 후각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유향의 연기와 습기를 머금은 대기는 공간을 더욱 성스럽게 만들어주었다.
천천히 나의 시선이 무덤의 공간을 살펴보다가 벽을 보니 20여 명의 선지자들의 명단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아담이고, 마지막에 적힌 이는 무함마드인데, 중간에 예수, 모세, 아브라함, 노아 등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이 같이 나란히 있었다. 욥은 아담과 노아의 중간에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와 이슬람이 섞여있다 보니 종교의 뿌리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둘은 같은 근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슬람교는 하느님이 태초 이후 인류에게 보내신 모든 예언자들에게 건넨 계시와 말씀을 포괄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아담부터 시작하여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모든 예언자들이 무슬림의 예언자들이고,그 예언자들 중 마지막이 무함마드이다. 꾸란에서는 모든 예언자들 중 25명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으며 특히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그중 예수와 무함마드는 실제로 연대기적으로 만날 수 없는 600년 정도의 시차를 둔 인물들이지만 신학적으로는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무함마드가 생전에 꿈속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다가 승천해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한다. 이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하늘은 7개로 구성되어있으며,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갔을 때 아담, 요한, 요셉, 아론, 모세, 아브라함, 예수를 만났었다. 보통 우리는 이슬람과 기독교를 완전히 분리된 종교관이라고 보지만 이슬람에서도 예수는 중요한 인물이다. 다만 기독교에서 예수는 신격화된 존재이지만, 이슬람에서는 유일신인 알라를 제외한 신은 존재하지 않기에 예수는 '완벽한 인간'이지, 신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은 오히려 기독교의 신을 포용할 수 있지만, 기독교는 이슬람을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픈 눈처럼 느껴졌다.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가 배척과 갈등을 내포하게 되는 건 안타까운 역설이다.
유향의 향기가 코를 마비시킬 때쯤 다시 공간을 나오면 바로 옆에 참배객들이 기도할 수 있게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고,그 옆으로 욥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 같은 암벽이 그 공간을 아담하게 만들어준다. 습기 가득한 공기로 인해 흙바닥은 푹신하고 살짝 시야를 흐트러뜨리는 안개는 이 욥의 무덤이 위치한 공간을 더욱 이야기 속 공간처럼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욥의 무덤 주변을 나와 걸으며 그곳을 감싸고 있는 자연 풍경에 취해 산책을 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작은 꽃망울이 이곳에서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으며, 작은 생명체들이 더욱 진귀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4계절이 낯설게 느껴졌다. 늘 갖고 지내던 것이었기에 몰랐지만, 그것이 진귀한 곳에서 보는 감동이 이렇게 큰 감동을 주게 될 줄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던 꽃 한 송이도 더욱 가까이 보게 되고 그 빛깔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이 자연풍경을 향유하며 돌아가는 길에 우기 때 폭포가 생긴다는 표지판을 따라 산속 어느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모두가 중동에서 보게 될 폭포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는데, 도착해서 보게 된 풍경은 우리 모두를 당황스럽게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폭포와 너무 다른 아담한 물줄기가 겨우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40~50cm 정도 되는 물줄기.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이조차 귀한 풍경이었다.
아마도 영어로 표현되면서 오해가 생긴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 정도 규모의 물줄기를 보기 위해 과일을 파는 상인이 있고,표지판도 있는 걸 보면 우리에게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자연현상도 얼마나 다른 환경에 사는 사람이냐에 따라 매우 신비롭고 기적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초록은 흔한 색이어도 이들에게는 몬순기에 한 때 찾아볼 수 있는 생명력의 근원이자 가장 아름다운 색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작은 물줄기 앞에서 이 얼마나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한동안 생각에 잠기었는데, 그 시선의 디테일함을 다른 곳에서 크게 확장되었다.
우연히 오만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전시한 전시회를 볼 수 있었는데,자연의 빛깔들에 대한 이들의 더욱 세밀한 감수성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자연은 단지 주어진 환경이 아니다. 사막성의 기후에서는 자연을 누구보다도 더 잘 관찰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자연에 대해 온 감각이 열려있고, 자연의 움직임을 보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진작품들을 보면서 그러한 시선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 사진 한 장 한 장을 쉽게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마침 전시회장에 사진을 찍은 사진가 중 한 명이 있어 그를 통해 사진집을 얻을 수 있었는데,그가 건네준 사진집으로 돌이켜 보는 오만의 숨겨진 장면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주었다. 파병을 떠나지 않았다면, 4계절을 겪던 한국사람으로서의 시선이 아닌, 중동의 기후와 환경에서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시선을 평생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에서 늘 배우던, 온갖 책에서 이야기하던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감명 깊은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될 줄은 생각해 보지 못하였다. 이들이 발견해낸 시선으로 인해 내가 하는 모든 경험들이 다시 한번 내 가슴을 조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