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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함장님의 이야기

해군에 들어와서 처음에 배치받은 부대는 욕지도란 섬이었다. 그러다 정말 운이 좋게 파병을 떠나는 문무대왕함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면서 처음에 가장 크게 느껴진 벽은 아무래도 규모로 인한 함장님과의 관계였다. 기존에 섬에서 근무할 때는 부대가 소규모여서 모든 간부와 대화를 해보고, 서로 알아갈 시간이 있었지만,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타는 배를 이끄는 배의 함장님은 결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그 때문에 언제나 나에게는 알아보고 싶은 인물 1순위가 함장님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처럼 전입으로 온 갑판직별 동기가 함장님에 대해 궁금하지 않냐고 했다. 이 배에 오고 나서 함장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뵌 적이 없었기에, 동기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고 동참하기로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함장님은 저녁시간 즈음 우리에게 연락을 주셨다. 저녁 시간이 지나고서 전화로 연락이 왔는데 막상 함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니 긴장된 마음이 앞섰다. 갑판병 1명, 어학병 1명, 그리고 조리병인 나까지 셋이서 조심스럽게 함장실 앞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노크를 했다.
"똑똑똑" "들어가도 좋습니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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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님의 답변을 듣고 우리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우리가 들어가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함장님은 천천히 포장되어있던 밀대(밀가루 반죽을 펴주는 나무 밀대)의 새 포장지를 벗기며 마치 검을 뽑듯이 꺼내었다. 순간적으로 당혹스럽게 변한 우리의 눈빛을 눈치채신 함장님은 우리에게 요리하며 같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팥칼국수를 굉장히 좋아하셨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팥칼국수를 만들며 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나는 무척 감동받았다. 게다가 함장실 옆에는 작은 취사장이 따로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니 팥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밀가루 반죽이 도마 위에 올려져 있었다. 우리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재밌게 팥칼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함장님의 리드로,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펼치면서 칼국수 면을 만들기 위해 칼로 써는데, 이때 밀가루 반죽을 만져보니 꽤 이미 반죽을 했던 걸 알 수 있었다. (나름 조리병이라고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함장님은 우리와 이야기하기 위해 미리 밀가루 반죽도 해놓으시고, 팥도 끓여놓으신 거였다.
이렇게 요리를 하면서 나보다 높은 분과 이야기를 한다는 게 처음엔 굉장히 놀랐지만, 덕분에 우리는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함장님 방에서 이야기했다면, 그곳의 분위기와 계급 때문에 여쭤보고 싶은 것에 대해 제대로 물어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편안한 대화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함장님도 그런 경직된 대화를 원치 않으셨는지, 일부러 같이 요리를 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주신 것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요리 이야기에서부터 대화의 운을 뗄 수 있었다.
함장님을 뵙는 것이고, 너무 긴 시간을 같이 할 수는 없었기에 미리 준비해간 질문들이 많았지만, 처음엔 편안하게 웃으며 대화하는 것에 집중했다. 면을 데치고, 팥에 간을 맞추어 만들어진 팥칼국수는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그 고소한 향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했다. 함장님은 자녀분들과 대화하고 같이 있을 때도 같이 무언가 활동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따님과 같이 일부러 보슬비를 맞으며 자연의 냄새와 향을 느끼며 걸었던 일, 만우절 날 가족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했던 일...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장님의 직업군인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어떤 모습이신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도 정말 금방 갔는데 칼국수를 만들던 30~40분은 금세 지나고 팥칼국수가 완성되었다. 팥칼국수가 완성이 되고 나서는 만든 음식을 그릇에 담고 함장님 방으로 이동했다. 같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소리와 함께 이야기는 점점 깊어져 갔다.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는 이어졌고, 그 여운은 잠들기 전 나의 일기장을 끄적이며 더욱더 또렷한 추억으로 새겨나갔다.

1. "함장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자신만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모두의 가슴에 있다. 함장님에게는 '저항'이 그중 하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직을 최고로 이끌기 위해선 저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청해부대라는 우리의 임무가 해외에서 외교적인 부분과도 중첩이 되므로, 특정 국가에 들어간 경우에는 함상에서 만찬을 즐기는 행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때 함장님보다 계급이 위인 사령관님이 여군에게 앞치마를 입히는 게 어떻냐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함장님은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여군에게 왜 앞치마를 입힙니까? 조리 직별 쪽에서는 여자가 없습니다."
"자네 반항을 하는 건가?"
"저는 해군을 이끌어갈 모든 자질을 갖춘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령관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해군을 이끌어 가실 분이기에 저항을 한 것이지,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화를 이야기 해주며 '저항'에 대한 함장님의 철학을 이야기해주셨다.
인류 역사는 저항의 역사이다. 프랑스혁명과 르네상스 모두 저항의 역사였다. 저항을 하면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생각'을 하게 된다. 저항 없이 일사천리로 가게 되면 잘하는 줄 알지만 그건 독재이다. 저항하다가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에는 남는다. 하지만 반항하다 죽으면 개죽음일 뿐이다. 저항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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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님에게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인 저항, 그것은 단순한 반항과 다른 것이었다. 그 저항의 과정에서 섬으로 발령을 받기도 하고, 방글라데시에서 지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들에서 더 성장할 기회들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저항의 가치를 품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조직에 충성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아도 조직을 위한 사람은 절대 목을 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 있는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실수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며 어리석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만 충성하다 보면 맹목적인 그릇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허울로 만들어진 리더를 충성하는 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한숨을 쉬지 않는가. 하지만 조직을 충성하고 아낀다면,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지위가 어떻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있다.
'조직을 사랑한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와 같이 권력에 굴복하고, 사람에게 충성했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함장님의 행동과 말들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2. 정의란 무엇인가 - '아덴만의 여명' 책 이야기

청해부대 임무로 인해 이곳으로 떠나온 것이었지만, 함장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소말리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소말리아가 무정부 상태이고, 극도로 열악한 환경 때문에 해적질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소말리아라는 나라는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긴 해안을 가진 나라여서, 어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그들에게 해산물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천연자원이었다. 그런데 정부 시스템이 붕괴하고 나서, 프랑스와 같은 외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앞바다를 노리고 수산자원을 가져갔다. 정부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방어 체계가 없어 외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마피아와 연계된 유럽의 회사들은 처치 곤란한 폐기물들을 소말리아의 해역에 버렸다. 그렇게 점차 소말리아 사람들의 자원은 점차 오염되어 갔다. 이에 분노한 소말리아 사람들이 독자적인 단체를 조직하고 무장하여 불법으로 조업하는 이들에게 보복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보다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는 것이 전세를 역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해적질이 돈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 이익에 눈이 먼 사업가들과 군벌들이 같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해적이 된 소말리아인들에게 무기를 공급해주며 해적 산업을 키워나갔다. 해적 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다시 더 좋은 무기와 더 많은 인력을 보충하게 하였고, 이로 인해 해적들은 더 늘어나고 준비되어서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이 해적 업은 소말리아 사람들의 큰 국가산업(?)처럼 되어버렸는데, 2008년에는 111번의 공격 행위를 통해 42번을 성공했고, 2009년에는 더 늘어나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해적질이 있었다. 이로 인해 2008년, 해적에게 인질, 배, 화물을 석방하는 교환 대가로 5, 800만 달러를 지불하던 것이 2009년에는 8,900만 달러, 2010년에는 2억 3,800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해적 1인당 연간 수입이 7만 9,000달러, 초짜 해적들도 연 2만 달러를 벌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연간 소득 평균임금이 약 500달러이던 사람들이 해적질을 하게 되면서 약 150배 이상의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원문: 7만 9,000달러의 연간 소득은 소말리아 평균임금의 약 150배나 되는 돈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 소말리아에서 해적은 엘리트로 간주한다.)
사실 소말리아라는 나라는 주요 사업이 목축이다. 이로 인한 수익이 1년에 16억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해적질에 성공하면 200~300억을 벌어들이게 된다.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돈으로 길들여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보편타당한 정의란 무엇인가? 모두 자신만의 정의(justice)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정의가 다른 이들에게도 정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늘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한다. 그래서 함장님은 책을 쓰셨는데 그게 '아덴만의 여명'이었다.
실제 2010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박을 구하기 위해 실시된 아덴만의 여명 작전 때 함장님은 작전참모였는데, 당시의 상황에 대한 사실과 상상력을 결합하며 쓴 에세이 형식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높은 계급을 가진 군인들은 늘 끊임없이 윤리적 가치의 경계선에서 늘 자신을 저울질하게 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저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살아감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중용'을 갖춰야 할지 늘 고민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는 계속 고민하게 되는 부분인데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보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읽은 책 중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과 김중혁이 같이 쓴 '질문하는 책들'에서 질문에 대한 두 저자의 생각이 인상 깊었다.
질문을 하는 일은 절벽 끝에 앉아서 돌멩이를 던지는 일과 비슷하다. 내게는 그렇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던지는 돌은 텅, 텅, 텅, 어딘가에 부딪치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돌멩이는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떨어질 것이다.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돌멩이의 궤적을 짐작할 수 있고, 높이를 가늠할 수 있고, 그 아래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다. 더 멀리 던져보기도 하고, 더 세게 던져보기도 한다. 돌멩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돌멩이가 '나는 아래에 잘 도착했어'라며 자신의 상태를 문자메시지로 전해주는 일도 없다. 절벽 끝에 걸터앉아서 한참 돌멩이를 던지다 보면, 문득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이 온다. -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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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좋지 않은 책은 간단하고도 명확한 답변을 자신 있게 제시하지만, 좋은 책은 늘 에둘러 가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긴 꼬리를 가진 질문을 남긴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한 권의 책이 얼어붙은 바다를 내리치는 도끼일 수 있는 것은 그 도끼의 날이 피할 수 없는 질문으로 벼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묻는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제대로 물어야 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그걸 못해서 그 모든 비극을 겪지 않았던가. - 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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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스스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3. 추억이 가장 큰 자산

마지막 이야기는 '추억'이었다. 함장님은 가족들과 추억 남기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가장 중요한 자산이 바로 추억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들과 자연에서 더불어 노는 경험을 중요시해서 땅을 맨발로 밟으며 같이 산책도 하고, 일부로 흑산도와 같은 섬으로 발령지를 선택해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으나 어느덧 20대 후반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즘 이 말이 내게는 가장 크게 와닿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병 때의 기억, 혼자 해외 배낭여행 갔던 기억, 부모님 모시고 가족여행을 내가 주도해서 갔던 기억들이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해주는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은 더욱 빛이 나는 것 같다. 특히 소중한 사람을 만난 추억은 더욱. 그래서 나에게 이 파병의 경험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