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와 그 반성은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바다 위에서의 노고를 받아준 첫 번째 나라
인도네시아
우리배가 처음으로 기항하는 외국이기에 모든 동료들이 설레면서 도착했다. 그곳에서 접한 역사에 대한 발자국과 향기는 이 나라를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두근거리는 여정의 시작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시내 중심에서 선조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그 불편함을 남긴 곳은 모나스이다. 모나스는 자카르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인데,1959년에 지어지고 이후 독립기념탑 및 국립 역사박물관으로써의 상징을 담은 곳이다.
이 탑은 높이가 무려 132m에 이르고 가장 상단에 있는 불꽃 모양의 조형물은45kg의 순금으로 이루어져 14.5톤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 이곳은 대표적인 공원이 되어 항상 관광객들과 인도네시아 학생들의 견학으로 붐빈다.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꿈꾸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장소에서현대를 살아가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평화로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한쪽 자리에 앉아 풍경을 오랫동안 살펴보다 보니 이 탑을 세우기까지 그 역사에서 기존의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닌하늘을 향해 치솟은 화려한 황금빛만이 가장 큰 위엄을 자랑하는 게 탑의 단단함만큼이나 딱딱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곳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 탑 그자체가 아닌미래를 위해 싸웠던 '선조들'이었기 때문이다. 독립기념탑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영혼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높은 탑의 형태는거대한 기둥과 황금빛만이 빛나고 있었다.
전쟁, 독립, 희생을 기린 기념비는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데그중 명작으로 꼽히는 것들을 보면 결코 그곳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누군가는 랜드마크를 만들며 풍경을 내세운다면,누군가는 역사와 그 공간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독일 1986년 하르부르크 모뉴먼트는 높은 사각기둥을 세우고그곳에 유대인 학살 때의 아픈 기억들을 적게 한 다음해마다 2m씩 묻으며 점차적으로 그 기둥을 묻어갔다.
어느 날 이 탑은 묻혀서 사라지고 파시즘에 대한 저항과 그것의 흔적은 땅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겐 남겨진 큰 상처는 10여 년의 시간과 함께천천히 아픈 기억들을 이겨내는 과정이 된다.
걸음을 옮겨 베를린 베벨 광장으로 간다면 '비워진 도서관'이라는 분서 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나치가 비독일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며 분서를 저지른 끔찍한 기억이 서린 곳이다. 이때 프란츠 카프카, 에밀,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스피노자 등의 저술들이 검은 재로 되어 사라졌는데,이러한 비문명적 행위를 역사적으로 반성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광장 중앙에 텅 빈 지하 서가를 만들어서 안을 볼 수 있다.
리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시인 하이네가 1820년에 쓴 작 품에 있는 문구가 같이 새겨져 있다.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태우게 될 것이다."
나는 이곳의 이야기를 듣고선 눈을 감아보았다. 저 비어진 공간 덕분에 하늘을 검게 물들였던 수많은 책들이 사라져 가는 소리와 잿더미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때 많은 이들의 고민과 역사가 담겨 있던 책들은 날리는 잿더미가 되어 가볍게 날아갔겠지만그 비통한 마음은 그 작은 재를 들기에도 무거웠을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 전쟁기념 모뉴먼트는 벽을 세우고그 위에 죽은 병사들의 이름을 새겨놓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 놨다. 그리고 사람들이 벽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벽의 재질로 인해 사람들의 얼굴 또한 같이 비추어진다. 결국 벽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소리 없이 말을 걸어온다.
이들의 희생이 있어 지금 여러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와 그 반성은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을수록,과거의 목소리와 희생이 무거웠던 곳일수록그 이야기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그것이 이런 독립기념탑과 같은 건축과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의가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면 본인이 자란 곳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 크게 지닐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인도네시아에서 유서가 깊고 이야기가 가득한 그들의 문화유산을 보고 있자니감격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면서 반했기 때문에그들의 수도 중심에서 거대한 탑과 황금빛만 있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적들은 너무나 훌륭하다.
인도네시아, 그 나라에 대해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억의 조각으로 남길 것은하늘을 반으로 나눈 탑이 아닌그들의 문화유산과 이야기가 된다면 이곳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가슴이 더 뭉클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