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하늘로

날씨: 바다와 정면으로 조우하다.그 벽을 뚫고 나오는 돌고래들의 힘찬 포물선은 그 어떤 붓질보다 힘차다.돌고래들의 등장과 함께 파편화되어 날아가는 물방울들은 빛이 씻어 내리면서 흡사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

누구나 어렸을 적 하늘을 나는 꿈을 꿔본다.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때의 꿈을 잊고 살아가는데, 나도 어느덧 비행기를 타 본 이후로 그 꿈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그러다가 아주 운이 좋게, 함 내 모범 수병(?)으로 당선되어 헬기를 타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취사장에서 전화를 받고 함미의 갑판으로 나가니 항공대 분들이 헬기의 이륙을 준비하고 계셨다.그리고 항공대 간부분이 내게 안전수칙을 말해주시며 장비를 건네주셨다.밝은 형광색의 안전장치가 내 몸을 조이고, 안전수칙을 들으면서부터 설레던 내 가슴은 헬기 안에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까지도 계속 두근거렸다.곧 시동이 걸리며 헬기의 진동이 내 몸까지 전달되다가 이윽고 프로펠러가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몸의 긴장이 더해졌다. 열린 문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긴장하며 이륙을 기다렸다.

헬기가 군함의 갑판으로부터 틈을 만들고 이륙하는 순간, 놀랍게도 돌고래들이 왼쪽 바다에서 힘차게 포물선을 그리며 나타나기 시작했다.돌고래들의 등장에 나는 더욱 흥분했고, 점점 배에서 멀어진 헬기에서 광활한 바다의 얼굴을 마주하며 바람을 맞으니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헬기 안에서 바라본 이 인도양의 바다는 얼마나 경쾌한 시야인가! 비행기의 너무 높은 고도와, 작은 창문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하늘에서의 시야는 광활한 바다의 얼굴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푸른 바다와 그 위를 나아가는 배를 바라보니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이 파병이라는 경험이 내가 살아갈 세상의 무대를 육지에서 바다로까지 넓혀주고 있다는 것이었다.한국에서, 그것도 한 지역에서만 살아왔던 내게, 한국이라는 육지를 넘어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확장해주었다.즉 현실에서의 나의 경험이 내 꿈을 확장해주는 순간이었다. 이 확장된 꿈은 다시 현실에서의 나의 무대를 넓혀줄 것이다.그리고 그 넓어진 경험은 또다시 꿈을 확장시켜주는 반복적인 구조에서 나를 한 단계씩 더 성장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마치 헬기의 프로펠러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점점 하늘로 올라가게 해주는 것처럼.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공중에서 바라본 세상은 배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넓어 보였다.물결이 만들어내는 바다의 질감은 그거 자체로 또 하나의 육지였다. 그리고 그 육지 위에 떠 있는 내가 탄 배 문무대왕함이 항해하는 모습을 보니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배가 지나가는 항로는 '길'이었다. 주어진 길은 없지만, 항해하며 나가는 길로 이 배만의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이 길은 우리의 배와 그 배에 탄 우리들을 모두 성장시켜 줄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나가는 배를 바라보니 일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장자의 제물론에는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라는 구절이 있다.이는 '길은 걸어가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의미인데, 원문에서 물위지이연(物謂之而然 : 사물은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된 것이다)란 말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즉 길은 내가 가야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해진 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었다.하늘에서 바라본 배를 바라보니 그 이미지가 그려졌다. 내가 지나간 길이, 앞으로 갈 길이 명확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으나, 내가 가진 방향성이 올바르다면 그 배는 분명 다음 목적지로 도착할 것이다.그리고 그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하늘로 비상하던 헬기처럼, 나도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군함으로 착륙한 후에도 이 경험이 준 새로운 시선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하늘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배에서 볼 때 보다 더 넓었고, 역동적이었다.게다가 공중에서 내가 탄 배를 바라보고, 수평을 넘어 수직으로까지 확장된 온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 기억은 하나의 파도가 되어 나의 작은 머릿속을 덮쳐버렸다.파도의 물살을 맞고 나니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과연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는 과연 어떤 그림일까?여과 없이 하늘의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짙푸른 바다는 착륙한 후에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바다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집어 들게 되었다.

수많은 바다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바로 얼마 전 몰타를 다녀왔던 일 때문에 지중해와 대항해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바다는 서구 인류 문명의 발상과 부흥에 큰 전환점이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기록은 크레타섬의 문명이었다.크레타섬은 이 파병 기행에서 계속해서 언급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섬이기도 해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특별한 섬이었다.그래서 이 섬으로부터 시작한 그리스 문명이 내 탐구의 첫 번째가 되었다.

그리스는 우리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와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로 유명하다.그래서일까, 그리스가 서구 문명의 출발점이라고 하는데, 이제까지는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지 못했다.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런 문명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이 갖춰진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라는 나라, 그리고 크레타섬을 알면 알수록 호기심은 점점 요동치게 된다.사실 문명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들이 비옥한 대지, 많은 인구, 풍요로운 자연환경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면, 그리스에서 문명은 발생할 수 없었다.여름 동안의 강수량도 적은 편인데, 이마저도 전체 강수량의 90%가 여름 한 두 달 사이에 내리기 때문에 애써 밭을 개간한들 유지하기 어려웠다.또한 땅에는 석회질이 많아 늘 대지는 갈증으로 목말라하고, 거친 땅 때문에 경작할 수 있는 것도 올리브와 같이 한정된 작물들밖에 없었다.작열하는 태양과 해류와 폭풍이 변덕을 부리며 찾아오고, 목마르며 갈라지는 땅에서 그들은 어떻게 문명을 일구었을까?

많은 원동력 중 하나는 그들이 육지를 넘어 바다로 나갔다는 사실이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스 사람들은 바다로 나갔다.목마른땅에서 식량과 자원을 얻기 힘들었던 그리스인들은 에게해 근처에 있는 다른 폴리스들에 올리브유를 내다 팔면서 식량을 들여왔다.다행히 그리스 주변의 에게해는 섬이 많은 바다여서 섬들을 짚어가는 단순한 항해술로도 바다를 건너기가 비교적 쉬웠다고 한다.이 덕분에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이는 상공업 발달로 이어지며 점차 자연스럽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가로 발전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이처럼 그리스 문명은 바다와 함께 발전한 문명이었다. 이때 그리스가 속한 에게해에는 3개의 문명이 자리 잡았는데, 그중 가장 번성한 곳이 크레타이다.

그리스 남단에 있는 크레타의 지금 모습은 조용하고 시골 같은 섬이지만, BC 2000년 무렵만 해도 고유의 문자를 가질 정도로 발전된 문명사회였고, 동지중해 중앙에 있어서 그 주변 대륙을 이어주는 무역의 거점이었다.그 무역을 통해 강성한 왕국의 모습까지 갖추었었고, 그 모습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크노소스 궁전이 아직 크레타섬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크노소스 궁전은 에게 문명 전기의 지배자인 미노스의 왕궁인데, 고대의 왕궁 건축물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이며, 그 실내가 매우 복잡해서 옛날부터 '미궁'으로서 유명하다.그리스 신화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으로 묘사되는데, 실제 이 건축물 내부에 미로처럼 뻗은 복도에 1,500개가 넘는 방들이 있다고 한다.이렇게 많은 방을 넣은 건축물인 만큼 치밀한 설계와 당시의 이야기를 담은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현재 확인할 수 있는 화려한 벽화 장식과 각종 유물에서는 크레타 왕국의 번영을 떠올려볼 수 있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남겨진 작은 반지와 그림 속에는 크레타섬의 해안가를 항해하는 배와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이렇게 바다와 함께 시작된 크레타 문명은, 그리스 본토에서 탄생한 미케네 문명과 함께 '그리스 문명'이라고 불린다. 이 그리스 문명은 이전에는 없었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나갔다.바다를 통해 얻게 된 풍요와 개방적인 문화는 그리스의 정치, 철학, 예술, 문화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고, 이것들이 우리가 지금 아는 그리스를 만들었다.

그리스 이전에도 분명히 인간사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를 서양 문명의 출발점이라고 했을까?이전의 문명들은 엄격한 질서와 통제 속에 성장했기 때문에 칼과 무력으로 다스렸고, 그로 인해 백성은 왕 앞에서 머리를 낮춰야만 했다.거기에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을 가두는 역할을 했다. 왕은 신의 대리이었고, 사제단은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가두었기에,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는 절대적인 권력과 종교적인 제의 안에서 그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이런 문명에서 생겨나는 풍요는 억압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그 근간인 인간을 닮을 수 없었다.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백성들은 고된 삶의 운명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니 자연스레 사후에 갈 수 있는 사회, 즉 내세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바다로 나가면서 더욱더 현실과 인간을 바라본 크레타와 그리스인들의 시선은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남아있다.

"그리스에서는 신이 사람의 자리로 혹은 사람이 신의 자리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고 할 수 있지.천하의 난봉꾼 제우스는 세상의 어느 인간도 해보지 못한 비뚤어진 사랑에 몰입했지.그리스 신들은 틈만 나면 마셨고, 아름다움을 겨루었으며, 질투와 시기의 놀음에 빠져 있었던 인간보다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반인 간 적인 모델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게야.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모든 약점을 신에 투영했으며, 신들이 내린 규율 중에 살인이나 배신과 같은 종류 이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신이래야 길거리 시정잡배의 행동보다 별로 나을 바가 없었는데 인간이 그 신의 지시를 따를 리가 없잖은가"

- 문명의 배꼽, 그리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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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리스인들은 보다 현실적이었으며, 신을 존경하지만, 절대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나아가 신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랐고, 그 결과 등장한 인간들이 바로 그리스의 '영웅'들이었다.그리스의 영웅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자리까지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희곡과 시로 이어졌다.영웅들은 같은 인간이기에 그리스인들에게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덕분에 영웅을 이야기하며 사상과 종교적인 틀에서 더욱 자유로웠던 그리스인들은 신 대신 인간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것이 새로운 세계관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탁월함'이라고 불렀다.

하늘을 날고 싶었던 어렸을 적 꿈은 이제 나에게 탁월함을 추구하게 했다. 배도, 나도 그것을 위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