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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을 깨닫게 해준 봉진님과의 점심 식사

본질을 찾으면 다름이 보인다.
2021.10.30 화요일
그래서 봉진님에게 최대한 진정성 있게 DM을 보냈는데 정말 거짓말같이 순식간에 점심 약속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세상에.... CEO가 직원을 이렇게 DM으로 만나주고, 심지어 점심까지 같이하다니!!! 이 쿨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랴부랴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봉진님을 만났다.
생각보다 훨씬 편안한 차림으로 혼자서 뚜벅뚜벅 식당에 들어오셔서 두 팔 번쩍 들어 인사를 드렸다. 긴장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짧게 했었는데, 봉진님이 워낙 편하게 이야기해주셔서 밥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흥미롭게 같이 식사를 했다. 내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편하게 대화를 걸어주셨는데,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봉진님의 탁월한 사유와 시선들에서 여러 번 놀라게 되었다.
대화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가지였다.

1. 탁월한 시각적 예민함

많은 디자이너분들이 그렇지만 봉진님의 탁월한 시각적 예민함은 정말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단 레스토랑에 들어오신 순간부터 공간을 이곳저곳 관찰하시는 모습부터 인상적이었는데 대화를 하면서 그 탁월함이 크게 인상 깊었다. 디자인툴에서 폰트 레이어가 2개 겹쳐 있는 경우 다른 사람들은 몰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봉진님은 그게 보인다고 한다. 정말 미세하게 차이가 나는 것들이 보이는 것인데, 그런 미세한 차이를 보는 것 때문에 집에서 액자가 아주 조금만 기울어져 있어도 신경이 쓰인다고 하신다
나는 이 시각적 예민함의 탁월함이 과연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교육자라는 직업이다 보니 어떻게 이 시각적 예민함을 훈련할 수 있을까란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생겨서 최근 MC 활동을 많이 하면서 생긴 약간의 인터뷰 스킬들로 몇 가지를 여쭤봤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이 굉장히 정리되어있다는 게 정말 큰 특징이셨다. 하루의 루틴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정리부터, 집안의 물건들까지 모두 가지런하게 정리한다고 하신다. 평소에 하루 루틴부터 정리되어 있다 보니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눈에 정확하게 보이고, 빠르게 수정하면서 개선해나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하면서 봉진님은 그 예민함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시려고 나에게 푸드판다앱(싱가포르 배달 플랫폼)의 초기 화면을 보여주시면서 눈에 띄는 점이 어떤 것인지 여쭤보셨다.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을 하다 보니 전체적인 레이아웃이나, 이미지의 위치 등을 이야기했는데 봉진 님이 한 카드는 텍스트가 black이고 한 카드는 텍스트가 dark gray이라고 이야기하시는데 아차 싶었다.
이런 작은 경험 하나까지도 놓치질 않으니까, 빈틈이 없는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계속해서 개선해 나갈 수 있었다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걸 듣고 나니, '내가 가장 예민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일까?'로 자연스럽게 고민이 이어진 것 같다. 내가 가장 예민해야 할 부분은 교육하면서 학생들의 현재 상태를 가장 빠르게 캐치하고,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역량일 텐데, 매 교육마다 이런 관찰 일지를 스스로 써보면서 예민함에 대한 탁월함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옛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탁월함

배민의 캐릭터는 굉장히 입체적이다. 깔끔하게 렌더링 된 플랫한 이미지나, 부드럽게 모델링 된 디자인이 대세인 요즘에도 이 느낌을 계속해서 일관되게 유지해나가고 있다. 정말 처음에 알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저 배달이를 디자이너분들이 직접 손으로 깎은 거였다!!!!!! 당연히 컴퓨터로 모델링을 한 것인 줄 알았는데 왜 손으로 깎은 것이었을까.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사실 회사에 다니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이런 게 통찰이구나 싶었다.
배달의민족은 B급을 이야기하며, 특정 그룹의 타겟보다는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는 감성과 콘텐츠를 고민한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주도 본태 미술관에서 아래와 같은 목각인형을 보고 영감을 얻으셨다고 했다. 목각인형은 우리 전통에서도 특권층의 장난감이라기보다는 일반 사람들이 뚝뚝 깎아서 만들어서 놀던 것인데, 그 감성을 배민에 담으려고 한 것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그 순간 디자이너분들이 제주도에 내려와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해보면서 지금의 배달이 캐릭터를 깎기 시작했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놀던 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서...
이런 생각과, 직접 깎은 과정 덕분에 그 디테일과 스토리는 남들이 결코 따라올 수가 없다. 빛에 의해 면마다 일어나는 미묘한 빛의 변화와 심지어 그림자도 단순히 검은색이 아닌 민트색, 노란색과 같은 색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배달이는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이 작은 차이들이 하나씩 모여서 대체 불가의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모든 좋은 요소를 다 넣고, 만족시키는 디자인은 사실 가장 촌스러운 디자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질 것인지 고민하고, 그 아이덴티티가 표현된 다른 영역의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재탄생시킨 그 관점의 탁월함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 같다.
나도 요즘 정말 재밌게 보고 있는 교육 관련 책은 10년 전 것이고, 무릎을 치는 강의는 40년 전 것이다. 최신 트렌드는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지 사실상 본질은 담지 않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현상을 살펴볼 나만의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에 있어서 본질적인 내용을 꾸준히 정리하고 그곳에서 현상들을 살펴볼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결론

사람을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 그 사람의 암묵지를 배운다는 것은 너무나 흥미로운 모험이다. 정말 대뜸 DM을 보냈는데, 만나주신 봉진님께도 너무 감사드리고, 봉진님 덕분에 탁월함을 만들어 내기 위한 나의 액션 플랜들이 보다 정교해질것 같다. 나도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쿨하게 시간을 내고 서로 더 큰 인사이트를 얻어갈 수 있는 경험을 더 많이 만들어 나가보고 싶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또 한단계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정말 멋진회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