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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몰타가 나에게 남긴 것

몰타에서의 2번째 상륙에서는 좀 더 몰타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발레타의 시내 중심지에서 버스를 타고 남서쪽으로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zurrieq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이곳에 내리게 되면 자연스레 소실점이 한 점에 모이듯 사람들의 시선을 이끄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1600년대에 지어져 400년 넘게 이 곳 zurrieq를 지켜온 성당이 있다.
동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전에 도착하면, 성당은 태양을 등져서 더욱 신성한 풍채를 뽐낸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예배가 끝나고 시간이 좀 지났는지, 10명 내외의 사람들만이 교회에서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생에 처음으로 직접 유럽의 교회를 본 것에 우리 모두 흥분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육중한 문을 열었다. 내부는 고요하면서 신성한 느낌이 났다. 우리는 잔잔한 꽃 향기를 내뿜는 공기를 가르며 발걸음을 옮겨갔다. 내부의 벽에는 바로크 시대 풍의 그림들이 걸려있었는데, 미술작품을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자 조용히 한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여행객인가요?" "네 저희는 이곳에 여행 온 학생들이에요." (군인이 아닌 척을 했다) "미술품을 좋아하나요?"“물론이죠. 관심이 많아요. 몰타는 카라바조가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던데 혹시 이 교회에서 그의 작품이 있나요?" "지금은 카라바조의 작품은 보여 줄 수 없지만 다른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어요 따라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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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아저씨 한 분이 교회 내에 있는 조각들과 그림들에 대해서 면밀히 설명해 주시는데 너무 친절하시고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하지만 아저씨가 설명해주는 성당에 대한 이야기와 작품들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의 종교가 무엇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저 할아버지가 지키고 관리하는 성당의 역사와, 그곳에 걸린 작품들의 이야기를 설명해주시던 그 순수한 마음이 느껴져 종교가 없던 나도 교회에서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그 어떠한 믿음이나 가치관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내부에 전시된 그림들은 바로크 시대에 이곳 몰타에서 생을 마감한 Mattia Preti의 작품들이 있었다. 몰타에는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바조와 마티아 프레티가 수년 동안 지내면서 작품 활동을 했기에 몰타에 있는 교회와 성당에는 이들의 작품이 많이 걸려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마티아 프레티의 작품인 'The Visitation'이 있었다.
그림에서 마리아의 사촌인 엘리자베스는 마리아가 신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축복을 바라는 인사를 나눈다. 교회를 관리하는 아저씨는 마리아와 엘리자베스의 표정과 손짓,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해주시는데,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비록 내가 무교여서 스토리에 대해 깊게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저씨의 마음이 전해져 교회가 참 따뜻한 곳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이 곳에서는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종교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인 포용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성당에서 느낀 순수한 기쁨의 여운을 가지고 다음에 향한 곳은 Blue Grotto라는 곳이다. 버스가 높은 언덕을 올라가며 푸른 바다가 보이는가 싶더니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졌다. 다들 창쪽에 얼굴을 바짝 대고 바라보느라 하마터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깜빡할 뻔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에 우리 모두 어린아이가 된 듯 방방 뛰면서 길을 따라갔다. 가는 길 또한 내리막길이어서 우리의 몸은 더욱 가볍게만 느껴졌다. 내려가니 보트 투어를 위한 매표소가 있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Blue Grotto는 입구의 일부분이 물에 잠겨 있어서 보트를 타고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보트투어를 위한 티켓을 구매했다.
우리가 탑승하자 작은 보트는 힘차게 출발하며 점점 절벽 가까이로 다가가는데, 모두가 그 청량감에 소리를 지르며 이 작은 항해를 즐겼다. 배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면서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오랜 시간 파도의 침식 작용이 만들어내는 세계가 조금씩 펼쳐졌다. 푸른빛 바다는 점차 투명하게 빛나고 있어서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곳과 같은 신비한 공간으로의 연결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파란 바다를 가르며 동굴 사이사이를 들어가며 투명한 바닷속을 보니 다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온몸에 튀기던 물방울들, 첨벙거리는 물소리, 시원한 바람의 냄새와 맛, 물에 담그던 손에 느껴지던 촉감, 좀 더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모두가 손을 바닷물에 속으로 담가본다.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었기에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 하며 사람들은 중심이 잡히지 않는 어정쩡한 자세에서도 기꺼이 몸을 일으켜 사진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나도 몇 번 시도를 했다가 카메라에 담길 수 없는 풍경이란 것을 깨닫고 추억만 남기려고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바꾸었다. 어차피 사진으로 남길 수 없으니 영상 모드로 동료들의 감탄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동료들의 기뻐하는 표정과 함께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자세히 보니 동굴 안은 의외로 파란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햇빛이 바다를 투과하면서 얕은 바닥에서 반사된 영롱한 빛이 투영되어 초록색으로도 보였다가 가끔은 짙은 보라색처럼도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물에 반사된 빛은 은색으로도 빛났다.
우리는 시간상 보트 투어 밖에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곳은 몰타에서도 전 세계 다이버들이 사랑하는 장소 중 한 곳 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100미터가 넘는 길이의 난파선이 잠들어 있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은 잠에 빠져드는 난파선은 물고기와 바닷속 생물들에 의해 천천히 이 곳 바다와 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환상적이었던 보트 투어가 끝나고 다시 육지로 발을 디딘 우리는 그제야 허기를 느끼고 주변의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야외 테라스에 테이블이 있는 걸 보고 방문한 식당은 그 입구에서부터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주인아저씨는 이 집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그 역사를 자랑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우리가 있는 이 공간이 그 과거의 시간 위에 쌓여 올라온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더 기품이 느껴졌다.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까르보나라, 밀크셰이크 등을 먹고 바람을 쐬며 오랜만의 상쾌한 행복을 누렸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쁨이란!! 그리고 그 기쁨을 같이 동거 동락하는 일행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이 짧은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우리 모두는 바다를 바라보았고, 바닷소리는 테이블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레스토랑에서 배도 채우고, 충분히 시간을 즐기고 나서 Blue Grotto 가까이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지인 하자르 임(Hagar Qim)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쳐서 Ghar Lapsi라는 곳까지 가게 되었는데 처음엔 당황했으나 여행지에서 잃는 길은 때론 예상치 못한 훌륭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파도를 받아들이는 거친 절벽들, 그 층들에 꽃피었던 암석들. 그 암석들의 표정은 바람과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였다. 지중해 위에 떠오른 태양은 그 풍경을 씻어 내리면서 더욱 환상적인 풍경으로 만들고 있었다. 정류장을 놓친 덕분에 우리는 섬의 절벽을 따라서 즐거운 드라이브를 하고 유적지로 도착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던 유적들은 나에게 그리스 신전들을 연상시켰다.
하자르 임(Hagar Qim). 이 곳은 기원전 330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의 거석 사원으로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구조물로 꼽힌다고 한다. 하자르 임은 태양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춘분, 추분, 하지, 동지 때 태양이 어떤 경로를 통해 사원 내부로 들어오는지를 예측하여 건설한 구조물이라고 한다. 내부를 보면 고인돌 같은 모습인데,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앞선 시대에 이런 무거운 돌로 건축물들을 지어진 것이 놀랍기만 하다. 건물의 내부는 타원형 방과 벽, 그리고 각 방을 연결하는 복도까지 이어져 있다.
사원 내부에는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돌들이 놓여있는데 이는 원시시대 풍만한 여인의 몸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성스러운 종교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여성과 다산을 숭배했던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돌 하나가 20톤에 해당하는 것도 있어 선사시대 거인이 만들었다는 전설도 있었다고 한다. 육중한 돌덩이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리며 인간은 신에게 무엇을 빌었을까?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건축기술로 지은 이곳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슨 염원을 이곳에 담았을까? 길들을 따라 걸으며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나에게 꽤나 재밌는 시간이 됐다.
유적지를 여행할 때 나의 습관은 그 시대에 대해 설명해놓은 안내 책자에 나와 있는 내용을 토대로 상상해보고 그 사람들이 보았을 주변 풍경을 느껴보는 것이다. 기원전 3300년경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 거석 사원에서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과 상상을 했을지. 바다 너머에 대한 호기심은 이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을 유발했을지. 배가 없었을 거란 걸 알면서도 나름 해군이라며 항해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기까지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든 풍경들의 요소들이 나에게 상형문자로 다가오고, 나는 그 문자를 읽어보려 애쓰는 것 같았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어떤 공간이 나오게 될지 상상하며 걷다보면 마치 고고학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몰타에서 두 번째 상륙에서 종교, 바다, 유적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고 가게 됐다. 이 감동은 나에게만 큰 것이 아니었다. 몰타를 떠나고, 파병의 기간이 지나갈수록 우리들의 기억 속에 몰타는 더욱 짙어져 갔고, 동료들의 기억에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곳이 이 곳 몰타였다. 몰타 이야기를 시작하면 몰타의 햇살이, 지중해의 일렁임이, 혀를 자극하던 맛있는 음식들이, 사람들의 기분 좋은 미소와 여유가 우리들 사이에 펼쳐졌다. 서로가 바라본 풍경이야기를 하면 어느새 우리는 몰타 구석구석으로 여행하게 된다. 유럽을 처음 경험한 우리들에게 성당도, 지중해도, 거대한 유적지들 모두가 처음 마주한 신비함이었다.

느낌은 진실이다

라고 말한 김춘수의 문장처럼 몰타에서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경험은 단순히 좋았다의 감탄사로만 끝날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이었기에, 저녁에 군함으로 돌아오는 대로 몰타에서 느꼈던 바들을 일기장에 빠른 속도로 써 내려갔다. 그리고 자기 전 떠올려보았다. 여행에서의 경험은 과연 나의 내면에서 어떻게 다시 끄집어 나올 수 있는가? 두근거림은 나의 열정만을 표현할 뿐 그것들이 어떤 모양을 이루어야 할지 모를 때 다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을 집었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이 여행하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을 토해낸다. 그것은 결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접촉했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자신의 연구, 그리고 그곳에 서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맥락 속에서 사람들에게 끼친 생활양식을 보려고 한 그의 시선이 녹아있다. 그가 책 속에서 거듭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자신의 <육체>로써 느끼는 경험을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굶주린 영혼에 추상적인 개념들을 잔뜩 채우려고 애를 쓴 적 있었지만, 자신에게 깊은 골을 남긴 경험들과 추억들은 머릿속이 아닌 손가락 끝과 살갗에 어려 있음을 이야기한다.
눈을 감고서 내가 알고 있는 나라의 풍광을 떠올려 보거나 소리를 들어보거나 냄새를 맡아보거나 손으로 만져 보기라도 할 때면,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오기라도 한 듯 나의 몸은 기쁨에 넘쳐흐른다. 한 번은 어떤 유대인이 유대교의 랍비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있는 영적인 팔레스타인, 그러니까 죽어서 가는 우리의 진정한 고향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랍비는 손에 쥔 지팡이로 땅을 쿵 찍으며 벌컥 화를 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돌과 가시덤불과 진흙으로 된,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진짜 팔레스타인 땅입니다.' 그렇다. 한 나라에 대하여 내가 간직한 추억도 정신적이거나 추상적인 물건이 아니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몸으로 겪은 수많은 즐거움이나 쓰라림 중에서 관념적이고 수정처럼 맑은 생각들만 상기한다면 얼마나 많이 허기를 느낄 것인가. 어느 나라를 다시 맛보려고 눈을 감을라치면 나의 오감이, 아니 내 몸에서 뻗쳐 나간 다섯 촉수들이 요란을 떨며 그 나라를 덮쳐서 내게로 끌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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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감정과 추억은 이내 곧 다시 현실 속에서 다른 형태로 구현되곤 한다. 지금의 나에겐 그것이 글과 사진으로 표현될 것이지만, 앞으로 그것들은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로 만들어질 것이다. 카잔차키스처럼 나에게도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환경에서의 여행이 나의 꿈을 더욱 심화시키고, 그 심화된 꿈은 현실에서의 나의 무대를 확장시켜 주면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자 이제 더 큰 꿈을 만들어줄 다음 여행을 위해 출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