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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침공은 어디?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고 나서의 생각
2015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들 중에서 1위를 한 항목이 무려 40개가 넘는다는 내용이다. 그 글은 너무 오래된 조사 결과와, 2~3위에 그친 것들은 모두 제외하고, 한국 언론이 공식적으로 보도한 경우로 한정된 사례들만 추렸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40관왕을 하게 된 한국의 모습을 민낯으로 공개했다.
1. 자살률 1위(10년 연속) 2. 1인당 외래진료 횟수 1위 3. 의료비 증가율 1위 4. 1 천명당 임상의사 수 최하위 5. 가계부채 증가율 1위 6. 남녀 임금격차 1위(10년 연속) 7. 노인빈곤율 1위 8. 노인 자살률 1위 9. 유리 천장 지수 1위(3년 연속) 10. 근속연수 최하위 11. 단기근속자 비율 1위 12. 장기근속자 비율 최하위 13. 저임금계층 비율 1위 14. 풀타임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 최하위 15.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 1위 16. 인구 100명당 도로 연장 뒤에서 1위 17. 도로 연장 1km당 자동차 보유대수 1위 18. 교통사고 보행 사망자 비율 1위 19. 수학 성적 1위 20. 교사에 대한 존경심 뒤에서 1위 21. 아동의 삶의 만족도 뒤에서 1위 22. 빈곤국 대외원조 뒤에서 1위(7년 연속) 23. 결핵 발병률 1위 24. 결핵 사망자수 1위 25.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 26.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 뒤에서 1위 27. GDP 대비 정부·민간 분야 사회 복지 지출 뒤에서 1위 28.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 1위 29. 청년층 고등학교 이수율 1위 30. 고등학교 완수율 1위 31. 민간 부담 공교육비 비율 1위(14년 연속) 32. 기혼자 세제혜택 뒤에서 1위 33. 여성의 사회참여도 뒤에서 1위 34. 출산율 뒤에서 1위 35. 평균 수면시간 뒤에서 1위 36. 성인 학습의지 뒤에서 1위 37. 낙태율 1위 38. 1인당 독서량 뒤에서 1위 39. 스마트폰 보급률 1위 40. 공공도서관수 뒤에서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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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간에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1위도 있으나, 안 좋은 1위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사람들은 낙담했고 헬조선이라며 우리 스스로를 비하했다. 나 또한 이 글을 보고 한 숨이 길게 나왔다. 그리고 이 한 숨이 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너무나 비슷해 한국어 더빙만 하면 한국 취재팀이 촬영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우리는 무어가 훔치기 위해 침공한 나라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무어가 비판하는 미국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가 누려보고 싶은 복지란, 교육이란, 그리고 또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제도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은 나에게 '인권'이라는 하나의 소실점을 바라보게 했다. '인권'. 굉장히 딱딱하게 들리는 단어이다. 하지만 인권만큼 우리에게 늘 가까운 용어도 없을 것 같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따르면 인권이란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의미한다. 과연 우리의 인권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 마이클 무어가 수고해준 덕분에 좀 더 쉽게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노동자들은 8주간의 유급휴가와, 13번째 월급을 받을 때, 한국에서는 2016년 기준 노동자들은 평균 4일의 휴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한 시골 초등학교 식당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한 코스식 학교 급식이 나올 때,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2000원짜리 급식을 먹는다.
핀란드의 학생들은 숙제가 없어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때, 한국의 학생들은 문제 푸는 방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슬로베니아의 대학생들은 학비 걱정이 없어 자신의 전공에 대해 집중할 때, 한국의 가난한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나면 최저시급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
독일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받고 휴식할 수 있을 때, 한국의 한 철도공사에서는 자신의 회사에 탈락했던 지원자들에게 파업 대체 인력 모집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노르웨이의 죄수들은 한국의 고등학생들과 재수생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뽑힌 여성 대통령은 아이슬란드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한국의 여성 대통령은 미지수이다.
무어가 침공한 나라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과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는 제도를 훔쳐오려고 하지만 사실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제도만 훔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가지고 있던 미국도 그것들은 실행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제도가 필요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반은 무어가 아이슬란드 여성들을 인터뷰할 때 그녀들이 한 이야기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당신들은 훨씬 개인주의적이죠. 나 자신, 내 가족은 중요하지만 그 밖의 것들은 관심이 없죠. 우리는 더 큰 집단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서로를 돌봐주려고 노력해요.:돈을 주고 살라고 해도 미국에서는 안 살 겁니다. 당신들의 사회,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이웃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절대 당신들의 이웃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서로에게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안 하고 있어요.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기분이 괜찮을 수 있죠? 밖에 수많은 굶주리는 사람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교육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죠? 전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로 기분이 괜찮아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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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공감하지는 못해 그것의 중요도를 자신의 욕구보다 낮게 평가하는 소시오패스적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의 연대의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흐릿한 것일까. 그것의 부재로 인해 우리는 나와 내 가족까지의 인권을 생각할 뿐, 그 외 타인들의 인권에 대해서 깊게 공감하지는 못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저서 <미할리스 대장>에서 아버지는 아홉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인들에게 교수형을 당한 기독교들의 발에 입을 맞추며 그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게 하였다. 그리고 대화를 나눴다.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 누가 이분들을 죽였어요?"아버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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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4줄의 대화에서, 죽음을 보장받지 못한 인권으로, 자유를 자본으로 치환한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우리는 가끔 눈앞에 보이는 것 때문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가난과 싸워야 하는데, 가난한 자들과 싸우고, 차별과 싸워야 하는데 여성과 싸운다. 튀니지의 여성들은 남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차별 그 자체를 만든 사회적 모순과 싸웠고 그것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녀들은 헌법을 바꿨다.
2014 튀니지 개정 헌법 46조: 여성의 권리 - 국가는 여성이 획득한 권리를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 국가는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여야 한다. - 국가는 선출된 의회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국가는 여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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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마이클 무어가 아프리카 대륙의 튀니지를 찾아간 이유일 것이다.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의 치부를 계속해서 드러내고 싸워나간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적 과오가 몰래 숨었다가 다시 등장하지 않게끔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포르투칼은 마약한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고, 노르웨이도 죄수와 싸우지 않고도 가장 낮은 재범률을 만들어 나간다. 이처럼 우리가 진정 싸워야 할 것을 인지하고 그것과 싸우기 위해 연대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한 층 더 침공하고 싶은 나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무어의 침공으로부터는 안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