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에서 한눈에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나라. 확대를 몇 번이나 하고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집중해야지만 찾을 수 있는 작은 나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가 있는 나라. 1770년 첫 이민자가 도착해서 살 게 되어 인간의 문명이 생긴 지 고작 300년밖에 되지 않아 원시림이 숨 쉬고 있는 나라.
그곳은 바로 세이셸이었다.
입항을 하며 바라본 세이셸은 지금까지 방문했던 그 어떤 나라들보다 풍경이 남달랐다. 입항하기도 전부터 들은 세이셸은 세계 제일의 휴양지 중 한 곳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세이셸은 연중 22~32도를 유지해서 1년 내내 따뜻하고 투명한 에메랄드 바다, 산호로 이루어진 해변, 시원한 야자수 그늘, 풍부한 햇빛과 보기 드문 해양 동식물 등이 1억 5천만 년 전의 원시림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내셔널 지오그래피에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해변 1위로도 꼽힌 적 있으며, 오바마 가족과 베컴 부부, 윌리엄 왕세손 가족들까지도 방문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과연 어떤 원시림의 풍경을 볼 수 있을지 기대했는데 입항할 때부터 보이는 아프리카의 고채도와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보임에 따라 누군가가 풍경을 떼와서 내 눈앞으로 당기는 것 같았다.
바로 배가 상륙할 수 없어 작은 보트로 갈아타고 발을 내딛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햇살과 고채도의 자연의 색이 나를 들뜨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들뜬 발걸음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우리는 인터넷과 사진첩에서나 보던 풍경을 실제로 바라보며 한동안 넋을 잃었다.
야자수와 푸른 바다가 마치 노래를 하는 것처럼 율동감이 느껴져서 넋을 잃은 채로 다가갔는데 따뜻한 바닷물의 온도가 온몸에 퍼져 들어갔다. 그리고 수평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멀리 바라보다 보니 내가 서 있는 이곳의 위치가 다시금 실감이 났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한국에 있던 내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니. 해군이라는 선택이, 그리고 파병이라는 선택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무대로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자 떠오른 문구가 있었다. 내 전공은 사회학이어서 사회학도가 가져야 하는 시선들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가 있었다. 보통은 물고기를 그냥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학도는 그 물고기가 살고 있는 바다에 대해 이해를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업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물고기의 생태계는 어떻게 다른지와 같은 바다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겪은 만큼, 내가 바라본 만큼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무대의 크기라는 생각에 눈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가 마치 무대처럼 느껴졌다.
이 무대 위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변가에도 내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그 고민이 머릿속에 오랜 시간 남았다. 그래서일까 그날 밤 잠들기 전 일기장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더 열심히 적어보았다.
다음날 이동한 곳은 La Mission이라는 세이셸의 국립공원이었다. 산 중턱에 있는 곳이어서 꼬불꼬불한 길들을 헤치며 올라가는 길은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자연의 생명력과 숨결이 느껴지는 숲을 따라 올라가며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구름이 실루엣처럼 산의 곡선과 청아한 자태를 보일 듯 말 듯 감추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경치를 바라보며 산은 조금 넘어가면 Tea Tavern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는 작은 Tea Cafe가 있다.
산 중턱에서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스콜이 쏟아져서 비도 피해야 했는데 향긋한 차 향기가 느껴지는 찻집을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Vanilla Tea를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에 온 모든 사람이 정말 조용하게 차를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빗소리는 차향을 더 깊게 만들어주었고, 세이셸에서의 기억을 더 진하게 남겨주었다. 찻잔이 천천히 비워질 때쯤 비가 그쳤다.
촉촉한 공기를 들이며 산을 마저 넘어가니 이번에 등장한 곳은 해가 저물어가는 해변가였다. 일몰을 바라보니 뜨거운 날씨, 시원한 비, 따뜻한 차, 붉은 노을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그 강렬한 감각이 아직도 차 한잔을 마실 때면 바닷물처럼 밀려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