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항구에 머문다면
높은 파도에 시달릴 일도
거친 비바람에 흔들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전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필요한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개척자'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무대를 확장해 나가는 개척자 정신은 항해하는 배에 비유해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배의 본질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듯, 개척자로써 무대를 확장해 나가는 이야기는 실제 바다를 항해하던 제 경험에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해군에서 군복무를 한 덕분에 저는 약 2년동안 바다 위에서 파도와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국내 바다 곳곳을 군함을 타고 다녔고, 그중 6개월은 해외파병으로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저를 가장 가슴 뛰게 만들었던 것은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 그 자체였습니다.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고, 바다에서 헤엄치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세상을 직접 조우하며 허기를 달래듯 이야기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조용히, 때로는 태풍처럼 제 마음을 휘젓다가, 침전하기도 하면서 마침내 그 경험들이 고운체에 걸러지듯 하나하나의 추억과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니코스 카잔차키스 라는 그리스인 작가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 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그가 여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물리적인 자신의 육체이며, 꿈이라고 부르는 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그의 영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구체적인 체험으로서의 여행이 추상적인 꿈을 심화시키고,그 꿈이 여행의 무대를 확장시키듯이 그의 삶이라는 것도 육체와 영혼의 상호작용을 통한 확장 과정인 것입니다.여행과 꿈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의 삶이 풍부해지고 그의 존재가 드높아지고 성장한 것처럼 저 또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을 읽고,매일매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의 경험이 제 가슴을 뛰게 하고 저의 꿈과 정신을 고양시켰습니다.그리고 그 그가 쓴 책들을 읽는 것은 부싯돌처럼 문장과 문장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는데 그 튀는 불꽃때문에 얼굴이 따끔꺼리고 온몸에 붙어서 몸이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온몸으로 느낀 그의 시선들과 함께 실제 마주하는 세상을 보면서 느낀 가장 놀랐던 점은 제가 그동안 배우고 인지하고 있던 세상이 너무나 작은 세상이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파병임무의 특성상 중동 국가들만 약 10회 정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반복된 방문을 하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해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슬람 문화권이 전 세계의 1/4이라는 것이었습니다.전 세계의 1/4이라 함은 중국 인구인 19%, 인도 인구인 18%만큼이나 엄청난 비율이지만,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까지도 전혀 한 번도 공부해보지도 못했고,제대로 역사적 설명을 들어보지도 못했었습니다.대학교에서 글로벌이라는 슬로건 아래 영미권과 중국의 문화와 언어의 중요성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볼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접 방문한 중동국가들은 미디어로 인해 만들어진 제 선입견보다 훨씬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특히 UAE의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엄청난 자본금과 사막지대라는 특유의 지형적 특성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경이로운 건축물들이 올라가고 있었는데,아직 그 건물들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 밑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충격이었습니다.막대한 자본금 또한 중요한 재료이지만,사막이라는 풍경은 그 어떠한 독특한 창의적인 건축물들도 조화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에 이전까지 없었던 혁신들로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우리가 중동에 가지는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세계의 기네스북에 줄줄이 이름을 기록하는 건물들이 올라가는 모습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건축물들을 보면서 저 외형이 만들어지고 나면 저 건축물 안에서 또 어떤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질까를 상상하며두근 거리는 몸과 마음으로 그곳을 담았습니다. 더 이상 중동은 제가 선입견으로 알고 있는 위험한 나라, 종교적 특색이 강해 배타적일 것이라 생각되는 곳이 아니라,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도전되기 어려운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었습니다.
이처럼 해외파병을 통해 접한 넓은 세계라는 무대와, 그 과정에서 확장된 꿈을 안고 전역을 하였습니다.그리고 NHN NEXT에서 2년간 프로그래밍을 학습하며 언제나 한국을 넘어선 무대를 생각하며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혁신들과, IT가 가져올 수 있는 변화들을 보면서 공부와 일이 가슴 뛰는 일이 될 수 있으며,이 일로 내가 세계를 다니며 경험했던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NHN NEXT 졸업 후에는 약 3년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버는 돈으로 틈틈이 모두 아시아 여행을 하는데에 투자하였습니다.그러면서 아시아와는 다른 문화를 가졌고, 많은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유럽.그중에서도 높은 시민의식, 산업디자인, 유럽의 리더 그리고 4차 혁명을 처음으로 꺼내어 유명한 '독일'에서 공부를 해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연고도 없고, 독일어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
독일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인과 같이 셰어하우스에서 지내는 경험은 유럽이라는 도시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베를린은 외국인 비율이 50% 이상이 될 만큼 독일인만큼이나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입니다.그래서 어학원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정말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어학을 배우거나 살기 위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다른 유럽 국가 친구들, 새로운 꿈을 안고 넘어온 남미나 아시아 대륙의 친구들, 중동의 사회문제로 인해 절박한 마음으로정착할 수밖에 없는 난민들과 함께 어학을 배우고 서로의 여정과 생각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가 아무리 복지 선진국이라며 부러워하는 나라들의 젊은 친구들도제가 만나본 친구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려고 했고, 심지어 독일 친구들도 독일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려고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위한 환경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었고, 그러한 과정 중에 베를린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그 중 인상깊었던 경험 중 하나는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한 이탈리아인 음악 선생님이었습니다.그는 대화를 하다가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영국에서 아리랑을 클래식으로 연주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여주면서 자신은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유럽은 과거로 먹고살지만, 아시아는 미래를 먹고산다. 나는 너무나 한국에 가보고 싶다'면서 한국의 대안학교에서 로봇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영상들을 보여주는데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어느곳이든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젊은 사람들을 처음부터 만족시켜 줄 완벽한 환경이란 없고,단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일이나 경험이 있을 때 그에 맞는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환경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그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지금 참여하며 진행하는 우아한테크코스입니다.
NHN NEXT 졸업 이후 2017년부터 현재 팀장님인 박재성 이사님과 함께 개발자를 위한 교육시스템 플랫폼인NEXT STEP을 만들기 시작하여 각자의 메인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다가 박재성 이사님이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하시면서 우아한테크코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저는 우아한형제들의 철학과 박재성님의 교육철학을 실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랜시간 함께 이야기한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에 반드시 함께하고 싶어 독일에서의 유학을 포기하였습니다.지금 제가 더 크게 성장하는데 더 적절한 환경과 기회는 지금 이 교육 프로젝트이고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기항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추상적인 꿈을 좇아 넓은 바다를 항해하던 전, 이곳에서 협업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지도에 우리의 활동을 기록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습니다.그래서 이 기항지에서 저에게 뿐만 아니라, 우아한테크코스팀원, 그리고 우아한테크코스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의미있는 기항지이자 별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 나가는게지금 저의 가장 큰 목표이자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