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을 알리는 배의 기적소리가 배를 육지로부터 밀어내었다.
드디어 오만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오만은 파병 중 주요 기항지여서 7번이나 들렸는데, 매번 반복되던 만남이 어느새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나에게 중동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알려준 이곳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는 공기를 힘껏 들이쉬었다. 이곳을 들리면서 과연 나는 무슨 경험을 하였고, 무엇을 배웠을까.
이슬람이라는 문화, 종교, 환경, 역사 등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곳이 어느새 나의 사고와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이슬람이라는 문화가 익숙해질 수 있는 경험을 했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두고두고 값진 추억이 될 것이다. 지난 7번의 기항 동안 그려진 추억을 다시 떠올려보며 이슬람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다시금 기록해보았다. 이슬람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던 나에게 이슬람은 아래와 같은 고정관념이 있었다.
•
테러
•
폭력적인 종교
•
여성의 인권이 낮은 종교
•
종교로 인한 많은 생활상의 규제
•
반미정서
•
석유 산유국, 석유가 없다면 이슬람은 무엇을 먹고살까?
•
알카에다와 IS
•
두바이와 국제 자본
테러와 폭력이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도 하면서, 두바이와 같은 도시에서는 스키장과 세계 최대, 최고, 유일의 건축물들과 세계 자본이 모이는 곳이라는 여러 복합적인 이미지가 그려진다. 하지만 최근의 IS의 테러 사건과 같은 폭력적인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이슬람이라는 문화권은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떠오르기 쉽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한 이런 정보가 이슬람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을까?
이슬람 세계는 15억의 57개국, 전 세계의 1/4에 해당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문화권이다.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5천만 명이 넘어 유럽에서는 이슬람이 두 번째 종교이며, 미국에는 2010년 기준으로 약 700만의 무슬림들이 2,000개가 넘는 모스크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이슬람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세계 3대 유일신 종교가 태어나서 인류의 정신 역사에 큰 획을 남기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으며,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결코 없어질 수 없는 종교인 이슬람에 대해 우리는 왜 편견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왜냐하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정규 교육과정에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입시에 중요하지 않음으로), 미디어가 보여주는 자극적이고 파편적 조각의 정보들로밖에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모습은 늘 낯설고 가까이하기에 어렵게 보였다. 하지만 오만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었고, 이제까지 알던 세상의 모습에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 줬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져보는 것, 그로 인해 인식의 확장을 넓히는 과정, 그 과정이 인도하며 포용할 수 있게 되는 다양성. 대학에서 늘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고 과정을 낯선 곳에서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오만을 떠나며 함 내로 흘러나왔던 함장님의 방송은 이 질문을 떠올리게 해 주었기에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에 맴돈다. 함장님은 우리가 볼 게 없다고 불평했던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편안한 고향이고, 라마단 기간에 들어와서 많은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그것을 겪지 않고 어찌 이슬람 문화를 경험해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셨다.
참고로 라마단이란 무슬림들에게는 특별한 기간이다. 모든 무슬림들은 매일 다섯 번의 예배와 함께 매년 라마단 기간인 한 달 동안 단식하는 기간을 가진다. 이 기간에는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으면서 자신을 인내하고 정화한다. 하지만 단식이라고 해서 정말 1달간 계속 굶는 것은 아니며, 해가 있는 낮 동안의 금식을 의미한다. 점심 한 끼를 굶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더운 날씨에 물까지 마시지 못하니 꽤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 기간에는 보통 음식점들이나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음으로 여행객들에게는 사실 피하고자 하는 기간이지만 임무 수행을 위해 온 우리에게는 피할 길이 없었다.
오만을 만나기 전 나는 다양성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오만이라는 나라가 나에게 준 가치가 특히나 더 소중한데, 최근 읽게 된 흥미로운 논문은 그 생각을 확장해주었다. 논문은 캐나다의 Martin Prosperity Institute에서 국제 창의력 지수를 측정한 연구 결과였는데 창의력 지수를 측정하기 위한 그들의 기준점이 흥미로웠다. 국제 창의력 지수를 측정하기 위해 이들이 중요하게 본 3가지 지표가 있는데 줄여서 3T라고 부른다. 이 3T는 Talent, Technology, Tolerance이다. 우리나라는 Talent와 Technology 지표는 그래도 높은 편이었는데, Tolerance(관용도) 가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이 관용도는 게이나 레즈비언, 소수인종과 같이 주류가 아닌 이들에 대한 관용도를 담고 있는데, 이는 서로 다름을 얼마나 인정해 줄 수 있느냐라는 것과 연관이 된다.
과거 몇 년 전만 해도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인 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상위권에 있는 거로 자부심을 가졌었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중국과 다른 나라들에 밀린 데다가, 국제 창의력 지수도 그리 희망적이진 않다.
그러나 사회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창의적인 인재로 거듭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익혀 알고 있는 사실들과 시선은 과연 얼마나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을까?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 채, 아무리 글로벌과 각종 트렌드에 'K'를 붙인다고 해서 세계인들의 인정을 받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자꾸 접두사로 무언가를 붙이기보다는 진정성을 가지고 다양성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더욱 중요할 텐데, 지금은 그 과도기인 것 같다. 그 때문에 누가 들려주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찾아 나서서 보고, 듣는 세상의 이야기가 진정 필요로 한 시점이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그려나가는 나의 항해지도는 그런 이야기들을 더욱 기록해나가고 싶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진정 내가 사는 세상의 다양성을 들려줄 이야기들을…….